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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리뷰

애플 TV+ 살리려는 총력전, ‘세브란스’에 거는 기대와 현실

by 우리집 가전리뷰 2025. 3. 31.

시작하며

애플이 이번에는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기존에 보던 맥 제품들 사이에 낯선 이름 하나가 눈에 띈다. 바로 ‘터미널 프로(Terminal Pro)’라는 제품이다. 짙은 파란색 외관에 미려한 디자인까지 갖춘 이 기기는 얼핏 보기엔 새로운 맥 시리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하다.

클릭해 들어가 보면 놀랍게도 이 제품은 실제 판매용이 아니라, 애플 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세브란스 시즌2’를 알리기 위한 마케팅 콘텐츠다. 애플이 가상의 제품을 자사 홈페이지에 실제 제품처럼 꾸며놓은 것이다.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상당히 계획적인 홍보 전략이라 할 수 있다.

 

1. 존재하지 않는 '신제품', 터미널 프로

이 ‘터미널 프로’라는 이름을 처음 본 사람들은 새로운 맥 모델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브란스 세계관에서 만들어진 설정 속 장치로, 루먼 인더스트리라는 가상의 기업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라는 콘셉트다.

이 제품을 보면 키보드에 ESC 키나 컨트롤 키가 아예 없다. 이건 단순한 디자인 생략이 아니라 드라마 내용과 연결된 상징이다. 세브란스는 일과 일상의 기억을 분리하는 기술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직원들은 업무 시간 동안 외부 세계의 기억이 차단된 채 일하게 된다. 그런 설정을 반영해, 탈출(Escape)도 통제(Control)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걸 디자인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기 디자인은 현실에 존재하는 제품인 데이터제너 ‘대셔 D2’와 유사하다. 이처럼 기존 제품을 모티브 삼아 가상의 기기를 만든 방식은 콘텐츠 세계관과 현실을 교묘하게 연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2. 애플 TV+, 왜 이렇게까지 할까?

이 정도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인 이유는 간단하다. 애플 TV+는 애플의 여러 서비스 중에서도 유독 수익을 내지 못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음악, 클라우드, 앱스토어 등은 모두 안정적인 수익원을 갖추고 있지만,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직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약 10억달러, 우리 돈으로 1조5,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하고 있고, 그동안 콘텐츠 제작에 투입된 금액도 50억달러를 훌쩍 넘는다.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나 디즈니+, HBO 맥스와 비교하면 가입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애플 TV+ 가입자는 약 4,000만 명 수준인데, 이 숫자도 사실상 애플 원 번들 요금제에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다. 단독으로 유료 구독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는 뜻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3억 명, 디즈니+는 1억2,000만 명을 넘었고, HBO 맥스도 1억 명 이상을 확보한 상황에서 격차가 크다.

 

3. 콘텐츠는 훌륭한데, 재미가 부족하다는 평

애플 TV+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들은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상미, 연출, 분위기 모두 정제돼 있고, 작품성 있는 드라마나 영화도 많다. 하지만 정작 사용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유는 명확하다. 보는 재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은 많지만, 넷플릭스처럼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오락적인 요소는 부족하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이 "볼만한 건 많지만, 손이 잘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다. 고급스러운 콘텐츠가 오히려 거리감을 만드는 셈이다.

이런 점은 단순히 취향 문제라기보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유지율'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처음에 흥미를 느껴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구독을 해지하게 된다. 이게 바로 애플 TV+가 겪고 있는 딜레마다.

 

4. ‘세브란스 시즌2’에 거는 기대

그렇다면 애플은 왜 ‘세브란스’에 이토록 많은 힘을 싣고 있을까? 사실 이 작품은 애플 TV+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시즌1이 2022년 공개됐을 당시,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를 기록했고, 여러 시상식 후보에도 올랐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이미 입증된 셈이다.

그래서 시즌2를 단순한 후속작으로 끝내지 않고, 애플 TV+를 살리기 위한 핵심 콘텐츠로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터미널 프로라는 가상 제품도 그 일환이며, 홈페이지 안에서 ‘세브란스’ 관련 영상과 정보, 제작진 인터뷰 등 다양한 콘텐츠로 연결된다. 맥북 구매자에게 애플 TV+ 3개월 무료 이용권을 제공하는 프로모션까지 함께 진행 중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점은, 애플의 CEO 팀 쿡이 직접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연출은 단순한 팬서비스 수준이 아니라, 애플 내부에서 이 작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다.

 

5. 한국 시장에서의 전략도 변화 중

애플 TV+는 글로벌 전체 가입자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별 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한국은 K-콘텐츠의 세계적 인기가 계속되고 있어, 애플 입장에서도 중요한 시장 중 하나다.

최근엔 한국 제작진과 협업을 추진하거나, 국내 배우들을 기용하는 오리지널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과거에는 미국 중심 콘텐츠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현지화 전략을 좀 더 적극적으로 펼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또한 업계에서는 애플이 디즈니+와의 제휴 가능성을 물밑에서 타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단독 플랫폼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시청자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일 수 있다. 영상 플랫폼 간의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자 접점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치며

이번 ‘터미널 프로’ 마케팅은 단순한 드라마 홍보 그 이상이다. 애플이 콘텐츠 하나에 브랜드, 기술, 세계관까지 결합해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금까지 고전을 면치 못한 애플 TV+가 있다.

이제 애플은 단순히 작품을 잘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질’ 수 있는 동기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아무리 멋지고 예술적인 작품도, 재미없고 공감되지 않는다면 결국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세브란스 시즌2’가 그런 의미에서 변화를 이끌 첫 작품이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하지만 하나의 콘텐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중요한 건 플랫폼 전체가 '재미', '공감', '지속성'이라는 기본기를 충실히 갖추는 것이다.

애플 TV+가 진짜 스트리밍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이제 소비자의 시선에서 다시 설계해보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